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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평화공원)


 

이틀전 제주도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셋이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몸이 안좋으시다는 소식을 간간히 들었던터라  많이 놀라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를
비롯하여 이모님들 네분이서 남다른 그 무엇으로 끈끈하게 뭉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제주를 피바다로 물들였던 제주 4.3항쟁이다.

어머니 11살때였다고 들었다. 어머니의 고향은 제주도말로 우뜨르라고 하는 표선면 가시리 산촌이었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폭도들 소식에  어서 너희들은 (어머니를 비롯하여 이모님 3분 외삼촌 1분)
 대나무밭으로 숨으라고 하시곤 당신들은(외조부모) 이내 그들의 손에 무참히 대창에 찔려
(대나무로 만든 뽀족한 창)
돌아가시었다. 어린 어머니와  이모님 세분 그리고 외삼촌은 외할아버니와 외할머니의 시신을 제대로
수습도 못하고 가묘로 매장하여 오랜세월 이장도 못하고 마음아파 하셨다 .
하루아침에 고아 닌 고아가  되어버린  11살이었던 어머니는 위로 두분 언니(이모)들 손에 의해
남의집 살이를 하면서 억척같이 살으셨다  한다.
너무 한이 맺혀있고 마음이 아파서 이런말씀 자주  들려주시지는 않으셨지만 말씀을
 꺼내시 기도 전에 눈에 눈물부터 그렁그렁 하신다.

그렇게 힘들게들 서로 의지하고 보듬으며 살아오신 어머니와 이모님이신지라 어머니께 두 분
이모님은 부모보다 더 한 존재셨다. 옆에 계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지가 되셨고 집안에 궂은일
기쁜일이 있으면 이모님 세분은 늘 마지막까지 함께해 주셨다.4.3사건이 제주도 전체를 피바다로
물들이고 그 와중에 살아남은 자들은 생활이며 모든것들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어디선가 외삼촌을 잃어버려서 찾지 못하고 오랜세월동안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지만
찾을길이 없으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10년전쯤에 가까스로 그때 헤어졌던 외삼촌을 찾게되어 외조부모님 묘를 함께 이장하면서
나무 뿌리에 얽혀진 남아있는  몇개의 유골 보고선 모두가 부둥켜안고 통곡을 하셨다고 한다.4.3사건이
 가져다준 상처들이  이러듯 제주 도민들에게는 너무도 컸다.제주도 전역에서 그렇게 무참히 지질러진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만행이었다.

내려가서 어머니 아픈 마음 위로해드리면 좋으련만 내려갈 형편이 안되는지라 어머니께 전화만 드렸는데
 어머니는 더이상 말씀을 못하셨다. 얼마나..섭섭하고 마음이 아프실까..평생을 부모같이 따르고 의지하던
어머니의 성님인데...

이모님 못가뵈서 죄송합니다.이제편히 쉬세요.
늘 웃음으로 맞아주던 이모님 얼굴이 생생하다.
이모님의 편안한 안식을 빈다.

4.3사건 진상을 밝히는 위원회가 구성이 되고 기념공원이 건립이 되었지만,
 무고하게 희생당한 유가족들을 위한 위로금이나 보상문제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4.3사건에 대해서 저도 잘 모르지만
간단히 펌글에서 참고용 자료로 덧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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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항쟁>
제주도 4·3 항쟁은 남북한 통일정부수립이라는 쟁점에 대하여 남로당의 단독선거의 반대투쟁과
 그 시기를 같이 하여 1948년 4월 3일 발발한 제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뒤 최초로 발생한 조직적
인 반미투쟁이다. 4.3이란 숫자는 제주도 무장대가 단선, 단정의 반대와 조국의 자주통일,극우 세
력의 탄압에 저항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미군정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을 향해 본격적으로 공격을
 개시했던 1948년 4월 3일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날의 사건은 복합적이고 누적된 전사의 한 기폭점에 불과하다 .작게 바라보았을 때 4월
3일을 전후한 여러 사건들일 수 도 있겠지만 넓게 보면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이 끝나갈 무렵 제
주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라 할 수 있다.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지 못한 채 잊혀져
가고 있는 한 사건.어찌 보면 광주 민주화 운동 때보다 훨씬 큰 규모의 인명이 사라져 갔던 이 사
건에 대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한 번쯤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Posted by 비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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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위미리처자 2009.01.04 01: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할아버지와 큰고모님도 4.3사건 당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현재 저희 가족은 유공자 가족이구여,
    할머니 혼자서 남은 6남매를 키우시느라 정말 정말 고생하셨다고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명절이면 눈시울을 붉히십니다.
    18살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신 큰고모님은 당시 영혼 결혼식을 통해 다른 희생자분의 선산에 같이 묻히셨구여.
    제주가 고향인 사람들은 이런 가족사가 조금씩은 다들 있으실거라 생각됩니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을 가지신 분들이 연세가 많으셔서 조만간 잊혀질까 아쉽습니다.

  2. 라이너스™ 2009.04.04 10: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아픔이 있었군요.
    국내지만 다른 사람의 일로만 생각했는데...
    마음이 아프네요...

  3. 탐진강 2009.04.04 1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 아픈 현대사의 한 부분이네요.
    살다보면 가족사의 아픔을 가진 가족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좀 더 평화로운 세상에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4. 검도쉐프 2009.04.05 0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주도의 역사도 그 높은 파도만큼이나 힘들었던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머님이 많이 힘드시겠네요. 많이 위로해 드리세요.

  5. pennpenn 2009.04.06 06: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모님의 명복을 빕니다.

  6. 백마탄 초인™ 2009.04.08 0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7. 공산 2009.11.18 2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 4 년 전 4.3사건 기행을 다녀 온 적이 있어요. 꼭 짚고 넘어가야하는, 참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지요.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딴청을 부리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8. 앞산꼭지 2010.04.03 23: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비바리님의 댁에도 이런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군요.
    어머님의 상실감이 엄청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비단 어머님의 경우만은 아니겠지요.
    제주 도처에 이와 같은 비극이 널려있겠지요.

    제주4.3항쟁은 분명 불의에 맞서 싸운 민중들의 항쟁이었습니다.
    그 뜻을 오늘에 되새기면서 고인들이 넋을 다시 한번 빌어봅니다.

    어머님과 외가식구들의 평안을 간절히 빌어봅니다.....